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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업(生業)
    역사 및 고고학 2022. 2. 12. 08:27

     생업이란 일반적으로 인류가 생존해 가기 위해 주변 환경에서 에너지나 영양소를 획득하기 위한 전략으로 야생동물이나 해수류의 수렵, 어로, 조개 채취, 야생식물의 채집과 재배, 농경, 동물의 사육 · 목축 등의 경제적 행위를 포함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 위에 각 활동의 공간과 계절, 도구 종류, 획득 · 수확한 양과 그 당시의 생산비, 조리와 보존, 분배라고 하는 소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단계를 구성요소로 가지고 있다. 넓은 의미로는 생산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고고학에서의 생산은 농경과 목축에 의해 식료를 생산한다든지 어떤 계획적인 경제행위를 포함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농경과 목축에 한정되 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신석기시대 생업의 주된 종류로는 수렵·채집 · 어로 가 있다. 지역적 · 시간적 · 내용적으로 차이를 보이지농경을 포함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석기시대 생업에 있어 그 비중은 크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주된 생업기반은 수렵 · 채집 · 어로활동이라 할 수 있으며, 재배 또는 농경 등은 보조적으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 수렵활동

     수렵은 구석기시대 이래 지금까지 계속 행해지고 있는 생업활동의 하나이며, 구석기시대 후기부터 자연환경의 변화에 따른 포유류 종의 변화와 함께 신석기시대 궁시의 등장으로 활발한 활동이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렵도구는 석촉과 창이 대표적이며 자돌구(刺突具) 일부도 수렵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출토되는 동물유체의 종으로 보면, 그 주체는 일본사슴 · 고라니 · 대륙사슴 등의 사슴과와 멧돼지이다. 그리고 여우 · 너구리 · 수달 · 토끼 · 호랑이 · 곰 등 현존하는 대부분의 동물이 나타난다. 멧돼지나 호랑이 · 곰 등은 석촉과 석창 · 자돌구로는 수렵이 용이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수렵의 유물 · 유구로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덫이나 함정 등도 수렵에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렵 방법으로는 궁시법 · 자돌법 등과 함께 함정법 · 섶사냥 · 덫사냥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이른 시기부터 개의 존재가 확인되기 때문에 수렵에 개를 이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수렵된 동물은 유적의 입지와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의 주체는 사슴과와 멧돼지이다. 유적에서 출토되는 수렵 대상 종을 살펴보면, 시기에 따라 수렵의 목적이 변화하는 양상을 알 수 있다. 이른 시기의 수렵 대상은 사슴과와 멧돼지로 그 목적이 고기 · 골수 · 골각기재료 확보 등으로 식료 획득이 중심이었다. 늦은 시기에는 사슴과와 멧돼지 이외에도 너구리 · 수달 · 늑대 · 호랑이 · 곰 등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보다 수렵 대상이 다양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동물들은 사슴과 또는 멧돼지와 비교했을 때 고기나 골수 · 골각기 재료로 이용될 수 있는 부분이 적은 반면, 털 · 장식품 재료 등으로 사용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수렵의 목적이 식료 획득에서 털 · 가죽 · 장식품 등 물품제작을 위한 재료의 획득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호랑이나 곰 등은 종교적 또는 권위의 상징 등 특수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조류는 크게 텃새와 철새가 있어 당시의 계절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아직 정확한 분석이 행해지지 않아 획득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양상은 알 수 없다. 수렵활동의 시기는 번식기를 중요시하는 수렵 · 채집민의 성향으로 보아 주로 겨울에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수렵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종과 양이 다양하고 많은 반면, 사용되었던 도구는 석창과 석촉 등으로 단순해 수렵행위의 구체적인 양상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과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민족지고고학 방법 등을 통한 연구가 필요하다.

     

    • 어로활동

     우리나라에서 어로가 본격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이다. 그 예로 구석기시대(아프리카와 중국 일부를 제외한 지역)에는 확인되지 않는 패총이 신석기시대가 되면 우리나라 동해안 일부를 제외한 해안과 도서지역에서 300여 개소 확인되고 있는 점과 결합식조침 · 작살 등 다양하고 많은 어로구의 출현을 들 수 있다. 어로방법으로는 화살을 이용한 궁시법, 결합식조침과 역'T'자형 조침 을 이용한 낚시어법, 다양한 작살과 찌르개를 이용한 자돌법, 추를 이용한 어망법 등이 대표적이다. .

     어로 대상이 된 어류를 서식 조건으로 보면, 2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내만의 기수성의 해역하는 숭어 · 감성돔 · 농어 등이 있으며, 둘째는 외양성 어류로 참돔 · 다랑어 등이 있다. 또 남해안과 동북지역 유적을 중심으로 강치 · 돌고래 · 고래 등 해서동물도 많이 출도하고 있다. 그리고 내륙지역 유적에서는 동물유체가 확인되지 않아 정확한 종은 알 수 없지만, 어망추와 찌르개 등이 출토하는 것으로 보아 강에서의 어로활동도 활발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양상을 증명하는 창녕 비봉리유적에서 확인되는 배의 존재이다. 어근활동은 강과 근해뿐 아니라 외해까지 나가서 활발한 어로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어종과 어로구의 관계는 정확하지 않지만, 참돔 · 다랑어 · 상어 등 대형의 외해성 어종은 낚시법과 자돌법이, 가오리 · 넙치 등과 바다거북이와 같이 해저에 서식하는 종은 잠수에 의한 자돌법이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연어와 고래 등에 대한 어로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특히, 고래에 대해서는 어로활동의 여부에 대한 문제이다. 고래는 길을 잃거나 병약해지면, 해안으로 올라와 죽는 경우가 있어 그때 포획활동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작살에 찔린 고래가 확인되며, 최근 울산 황성동에서 고래 견갑골과 척추에 작살이 박혀있

    는 채로 출토된 예도 있어 고래에 대한 어로활동이 행해졌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의 작살과 어망등 어로구로 볼때 포획이 가능했을까하는 의문도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앞으로 자료의 증가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패류는 다른 식물과 비교해 버려지는 것이 많았고, 칼로리 역시 낮아 식료 자원 중에서 효율이 매우 낮은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신석기인들의 활발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양상은 후빙기에 형성된 자연 환경, 즉 패류가 다량으로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2009년까지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300여 개소 가깝게 확인되는 패총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신석기인들의 포획 대상은 굴류가 지역과 시기에 관계없이 가장 많이 출토되며, 그 외에 전복 · 소라 등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종과 백합 · 바지락 꼬막 등 사니질(沙泥質) · 니질(泥質)에 서식하는 종 등 다양하다. 또한 비봉라유적처럼 담수에 서식하는 재첩으로 형성 된 패총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담수 어류에 대한 어로활동과 동일하게 강에 대한 패류 채취활동도 활발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패류의 획득 방법으로는 잠수법, 굴지법 등이 있다. 잠수법은 전복과 소라 등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패류에 활동으로 암초에 서식하는 전복과 같은 종은 빗창 등을 이용했을 것이다. 또 잠수의 흔적은 인골에서 확인되는데, 남해안에 위치하는 통영 연대도 · 욕지도 유적의 무덤에서 확인된 인골에서 잠수에 의한 병으로 알려진 외이도골종이 남녀 구분 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잠수는 적극적으로 행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굴지법은 우리나라 서해를 비롯해 서남해안에 분포하는 개펄에 서식하는 종을 대상으로 타제석부 등을 이용해 행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조개채집에 있어서도 상당한 기술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어로구와 동물유체에 의한 시기적인 변화로 어로 활동을 살펴보면, 이른 시기에는 외양성어업이, 늦은 시기에는 내만성어업이 활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어로활동은 유적에서 출토하는 동물유체와 다양한 어로구 등과 함께 300여 개소의 패총을 통해 볼 때,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생업에 있어 가장 큰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식물채집활동

     수렵과 함께 구석기시대부터 행해진 생업활동이며, 잡곡농경과 함께 신석기시대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갈돌, 갈판, 고석은 도토리 · 가래 · 호두 등 견과류와 근경류 등을 제분하는데 사용되는 도구로 신석기시대에 제분기술이 확립되었음을 보여준다. 창녕 비봉리 · 울산 세죽유적에서 확인된 도토리 저장시설은 떫은 맛을 빼는 기술의 확립도 보여준다. 이와 함께 자비용기(煮沸用器)인 토기의 등장은 신석기시대의 음식을 풍부하게 만든 요소 중 하나이다. 즉, 제분과 떫은 맛을 빼는 기술로 얻은 전분을 토기의 끓이는 기능을 통해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 음식이 풍부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도구에 의한 요리방법과 저장방법 등으로 견과류와 구근류를 비롯한 식물자원이 신석기시대의 중요한 식료자원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식물채집은 어로 활동과 함께 신석기시대의 안정된 생업 기반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 농경활동

     신석기시대 농경의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정의 는 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그 용어 문제에 있어서도 이견이 많다. 신석기시대 재배 곡물은 유적에서 출토되는 종류를 보면 조 · 기장 · 수수 등이 대부분이고, 그 외로는 쌀 · 보리 · 밀 · 콩 등이 있다. 지역적인 분포를 보면 조 · 기장 · 수수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확인되는 반면 쌀 · 보리 · 밀 등은 충청북도 옥천 대천리유적과 경기도 일산 가와지유적, 김포 가현리유적을 비롯한 이 지역 토탄지 조사에서 확인되었다. 또 벼규소체는 두 지역 이외에도 김해 농소리패총에서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곡물의 출토에도 불구하고 곡물을 경작한 밭 · 논과 같은 경작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 농경활동에 대한 의문점이 남는다. 그러나 농경활동이 행해졌다는 증거로는 곡물이 출현하는 시기의 석기조성과 유적입지의 변화 를 들 수 있다. 한편, 농경을 행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입지 결정 토지 이용과 개간 거름주기 경작과 제초 파종  수확  가공' 이라는 일련의 행위가 필요하다. 그러나 고고학에서는 유물로 남는 것 이외에는 유추는 될 수는 있으나,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유물로 남는 것으로는 경기구(起具具) · 수확구 · 조리구의 농경구가 있다. 이러한 도구는 농경이 행해지지 않는 시기나 지역에서도 나타나는데 곡물이 확인되는 중기 이후에는 이와 관련된 도구들이 세트로 출토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농경구로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는 보이지만, 보편적으로 경기구 - 보습과 괭이 또는 곰배괭이, 수확구 - 낫 · 원반형석기 · 타제석도, 조리구 - 갈돌과 갈판이 있다. 이러한 석기 조성의 변화와 함께 유적의 입지에 있어서도 중기 이후에 변화를 나타낸다. 중기 이후에는 해안 도서에 집중되어 있던 유적의 입지가 내륙으로 넓어지는 등 앞시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지역적 ·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중기 이후에는 출토되는 곡물을 비롯하여 농경구의 조성 및 유적의 입지 변화 등으로 보아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농경이 어느 정도 행해졌다고 볼 수 있으나, 신석기시대 생업에 있어 그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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