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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시대 무덤[新石器時代 墓]역사 및 고고학 2022. 2. 8. 00:29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무덤이 조사된 예는 많지 않다. 북한에서는 상원 용곡리 동굴, 나선 용수동, 경성 지경동, 회령 봉의동 유적 등에서도 인류 화석이나 신석기시대 유물의 출토가 보고되어 있지만 무덤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남한에서 발굴조사된 신석기시대 무덤의 출토지로는 춘천 교동 동굴유적, 옹진 시도, 부산 동삼동 · 금곡동 율리 · 범방, 통영 욕지도 · 상노대도 · 산등 · 연대도, 김해 예안리, 울진 후포리, 진주 상촌리, 고성 문암리, 여수 안도 유적 등이 있다.
묘제로서 옹관묘는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기원전 5000년경)부터 나타나 중기(기원전 2000년경)까지 이어지나 그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적석 혹은 부석의 형태를 한 묘제는 전기(기원전 3000년경)부터 중기, 후 · 만기(기원전 1500년경)까지 존속한다. 동굴 무덤은 교동이 유일하며 후 · 만기에 처음 보인다. 화장이나 굴장, 세골장 등이 보이지만 신전장이 대세이다. 교동 동굴 무덤, 욕지도 2호 무덤과 연대도 2호 무덤, 후포리 세골장 무덤, 안도 1호 무덤은 복수장이다.
무덤의 공간 구획 개념이나 입지상의 특징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생활공간과 공존하는 경우로 동삼동 옹관묘와 석관묘, 욕지도 4호 무덤, 범방 무덤, 문암리 무덤, 안도 무덤, 상촌리 1·2·3호 옹관묘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동삼동 석관묘를 과연 무덤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검토 여지가 있다. 둘째, 생활구역과 공존하지만 분명한 구획 개념이 있는 경우로 연대도 집단 무덤 욕지도 1·2·3호 무덤 등이다. 셋째, 특별한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경우로 시도 적석무덤, 교동 동굴 무덤, 금곡동 율리 적석무덤, 후포리 세골장 무덤, 산등 무덤 등이다
독립된 구릉이나 바다가 잘 보이는 특출한 곳, 동굴이나 바위 그늘 등에 입지 하고 있다. 그러나 시도나 금곡동 율리 패총의 경우 무덤이 맞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매장시설로는 묘광이 있지만 뚜렷한 수직각을 이루지 않는다. 돌이나 토기편을 두어 시상의 역할을 한 예로는 연대도 4 · 5 · 7 · 8 · 9 · 10 · 11 · 12 · 14 · 15호 무덤, 안더 3호 무덤이 등이 있다. 상촌리 1호, 2호 옹관 아래에는 옹관을 정치하기 위한 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골을 덮는 시설물도 확인된다. 토기편으로 인골을 덮은 예로 욕지도 4호 무덤, 연대도 4 · 7 · 10 · 14호 무덤이 있다. 연대도 11호 무덤의 경우 인골의 출토상태로 보아 인골 위에 완형토기를 둔 것으로 판단된다. 주검 위에 돌로 시설물을 하는 것은 소위 적석유구라고 하는 것이 모두 해당된다. 연대도와 욕지도의 모든 무덤, 금곡동 율리, 동삼동 석관의 상부 시설뿐만 아니라 시도의 석총도 동류로 판단된다. 후포리의 경우도 장대형석부는 인골을 덮은 시설물일 가능성이 있다.
인골의 침향은 대향이 주로 바다 쪽을 보고 있음이 주목된다. 남녀의 성비는 비슷하다. 연령별로는 장년이나 숙년이 많으나, 산등과 범방패총의 경우 10대의 인골이다. 그러나 당시의 개념으로는 10대의 경우 성인에 해당될 가능성이 많아 어린이의 무덤이 없다는 것이 특이하다. 동삼동 패총이나 상촌리 유적의 옹관묘가 어린이의 무덤일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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