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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계리유적(破川 鳳溪里遺蹟)
    역사 및 고고학 2022. 2. 10. 09:50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봉계리 311 오림마을에 위치하며, 남부 내륙지역의 신석기시대 후기 문화의 표식적인 유적이다. 합천댐 수몰지구 유적조사의 일환으로 실시된 봉계리고분군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되어 발굴조사 하였으며 합천댐 공사 후 수몰되었다.

      유적의 범위는 마을전체를 포함하는 매우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며, 수몰 일정에 따라 매우 제한된 범위에 걸쳐 조사가 이루어졌다. 신석기시대의 유구로는 주거지 13기을 비롯하여 돌무지시설과 소성 유구(燒成遺構) 각 1개소,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3동과 돌무지시설 2개소, 통일신라시대 주거지 1기, 조선 시대 수혈주거지 1기가 각각 조사되었다. 당시에는 남부 내륙지역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의 수가 매우 희소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구가 확인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이 유적은 남부 내륙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신석기시대 주거지이며, 내륙지역 신석기문화 연구의 단초를 제공한 매우 중요한 유적이기도 하다.

     유적은 낙동강의 지류인 합천의 황강 중류역의 충적대지에 형성되었으며 퇴적층은 4개의 층위로 구분된다. 표토층은 두께 35cm가량의 흑갈색사질토층( I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II층은 두께 25cm가량의 황갈색사질토층이며, III층은 두께 20cm 가량의 황갈색사질토층, 그리고 IV층은 두께 10cm 가량의 황갈색사질토층이며, 그 아래는 자갈층이다. 조사지역이 민가 아래에 위치한 관계로 교란이 매우 심한 편이며, III · IV층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유구가 조성되었고 당시 생활면은 주로 III층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대체로 말각방형 내지 원형이며 규모는 직경 5m를 전후한 것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중에는 직경 3m 전후의 소형 수혈유구도 포함되어 있는데 일상적 주거지와는 구별되는 특수한 작업장의 성격으로 판단된다. 화덕자리(爐址)는 주거지의 경우 대부분 중앙에 위치하며, 작업장의 경우는 측면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9호와 18호 주거지의 경우 내부에 수혈저장고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내부에서는 도토리와 가래 등이 탄화된 상태로 출토되었다.

     봉계리유적 출토 토기는 조사보고서에서 토기의 특징에 따라 모두 5기로 편년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자료들을 참고할 때 4기로의 편년이 가능하며, 그 중 가장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봉계리식토기의 문양적 특징은 2기단계에 집중되고 있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후기로 편년되는 봉계리 2기 토기의 특징을 간단히 살펴보면 신석기문화 전 시기를 통하여 가장 다양한 문양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이 시기 토기에는 구연부에서 일정한 간격을 띄우고 사격자문(斜格子文)을 중심으로 하는 중기 단계의 각종 새김문양들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평행 열점문(列點文)이 시문된다. 문양의 시문 부위는 동체부까지 한정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 중기 단계와의 차이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구연부와 문양대 사이에는 회전물손질 흔적이 나타나는 점도 이 단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적 요소 중의 하나이며, 어쩌면 회전판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예상된다. 또한 봉계리식토기 단계에 나타나는 구연부에서 일정한 간격을 띄우는 전통에서 이중구연토기로의 변화양상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남부지역 신석기시대 만기(晚期) 단계에 나타나는 문화의 계통성과 청동기시대에 나타나는 이중구연토기의 원류를 짐작할 수 있는 주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석기류는 1~4단계까지 층위적 구분은 곤란하지만 타제석부나 박편석기류, 굴지구(掘地具)류와 같은 타제석기류를 중심으로 국부 마연석부와 소형 숫돌, 갈돌 과 갈판 등이 나타나고 있어 일반적인 신석기문화에 나타나는 내용과 동일한 편이다. 그런데 중기 단계에 흔히 나타나는 석촉류의 출토 예가 없다는 점은 상당히 특징적 요소라 할 수 있으며, 대신 보습과 같은 농경구의 수는 매우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부분의 신석기시대 후 · 만기 단계 유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신석기시대 후기 단계에 이르면서 수렵의 비중은 극히 감소하고 농경의 비중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 외에 봉계리유적의 저장구덩이에서는 탄화된 도토리(상수리), 호두(가래), 살구(매실), 보리수열매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온대림에 자생하는 낙엽수이며 도토리 외에는 당시까지 한국에서 처음 나온 것들이다. 도토리, 호두, 보리수 등은 대개 10월경에 열매를 맺지만 살구, 매실 등은 5~6월경에 채집한다. 그러므로 봉계리유적에서 나온 탄화된 씨앗을 통해 볼 때, 여러계절에 걸쳐 채집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봉계리유적에서 확인된 2기의 절대연대는 9호 주거지의 저장구덩이에서 출토된 도로리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4060±105BP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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