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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암리 유적(高城 文岩里遺蹟)역사 및 고고학 2022. 2. 10. 11:02
사적 제426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 1일대에 위치한다. 유적은 속초 거진간 7번국도를 타고 북상하다 토성면과 죽왕면의 경계인 문암교를 지나 우측의 백도해 수욕장 입구로 진입하면 좌측으로 문암1리 마을 북쪽에 바다쪽으로 해발 41m 정도의 구릉이 위치하는데, 구릉의 남쪽사면 끝부분에 위치한다. 유적은 북쪽의 구릉이 감싸안고 있으며, 남 · 서편으로는 넓은 평야와 서에서 동으로 흘러드는 문암천이 있고 동쪽으로는 400m 거리에 동해가 위치하고 있다.
유적은 2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되었는데, 1차 발굴조사를 하여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 및 야외노지 5기 등이 조사되었다. 2차 발굴조사에서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3기, 매장유구(葬遺構) 1기, 야외노지 1기, 수혈 3기 등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유적의 층위는 10개층으로 나뉘는데 해일 또는 범람에 의하여 밀려와 유적의 전체를 덮은 5층(백색모래층)을 기준으로 1~3층은 중기의 침선문토기가 출토되며, 6~10층은 무문양토기(無文樣土器),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 오산리식토기(蓄山里式土器) 등 전기의 유물이 출토되어 크게 구분된다. 7~1층에서는 1차 조사에서 발견된 주거지 2기, 야외노지 5기 등이 조사되었고, 이 층을 제거한 후 7~2층에서는 2차 조사에서 발견된 주거지 2기, 매장유구 1기, 야외노지 1기, 수혈 3기가 조사되어 7층 내에서도 어느 정도의 층위가 구분된다. 9층에서 확인된 02-7호주거지는 7층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물과 달리 무문양토기만 출토되어 층위적 선·후 관계와 함께 출토 유물에서도 구분이 된다.
유적에서는 모두 5기의 주거지가 조사되었으며, 대부분 바닥 일부만 남아 있으나 98-1호와 02-7호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원형, 말각방형, 장타원형 등 일정한 형태가 아니며, 그 중 하층에서 확인된 02-7호주거지의 경우는 긴 장타원형 주거지이다. 주거지 바닥은 98-2호는 맨바닥을 그대로 이용하였고 나머지는 불다짐을 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거지의 내부시설로는 노지가 확인되는데, 평면형태는 원형 내지는 장방형이다. 노지는 길이 1m, 너비 0.8m 크기이며, 얕은 토광을 파고, 가장자리로 돌아가면서 할석을 세웠으며, 02-7호주거지의 경우 노지내 소토에서 작은 골편들이 확인되었다. 유적에서는 4호수혈의 일부를 파괴하고 축조한 신석 기시대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동쪽으로 바로 인접하여 5호주거지가 확인되고 있으나 출토 유물과 토층상으로 시기차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의 동시기로 생각된다. 토광묘의 크기는 추정직경 1.5m, 너비 0.84m, 깊이는 0.12m 내외이며, 형태는 말각방형으로 1/3 정도가 남아있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남북방향이다. 출토유물은 남쪽의 머리맡에 소형발형토기(小形鉢形土器)1점과 귀에 착용된 결상이식 1쌍, 석부 2점이 출토되었다. 결상 이식의 재질은 옥제품으로 각각 형태는 타원형과 원형이다. 타원형이식은 상단부 일부가 편평한 면을 이루며, 크기는 길이 3.4cm, 너비 4cm, 두께 0.7cm, 트임부는 0.2cm이고 구멍은 원형이고 지름은 1cm가량의 원형이다. 원형 이식은 둥근 곡선을 이루며, 크기는 길이와 너비 각각 3.6cm, 두께 0.65m, 트임부 0.2cm, 구멍은 0.9cm 정도의 원형이다.
토광묘 크기로 보아 신전장(伸展葬)하기에는 작은편이고 귀에 착용한 결상이식이 일정한 간격에서 확인되는 점으로 보아 부산 범방패총에서 확인된 경우와 같이 상체는 펴고 다리부분을 'X'자형 형태로 꼬아서 놓은 형태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 유물로 보면 신석기인들은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유물과 함께 평상시에 착용하였던 장식품을 함께 매장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에서는 수혈이 3기 확인되었는데, 이 중 8호수혈은 다른 유구에 비하여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수혈의 크기는 길이 1.74m, 너비 0.92m, 깊이 0.14m이며, 평면형태는 1단을 이루는 부정형이다. 수혈의 내부에서는 잘 마연된 석부 7점과 결합식조침 37점 등이 매납되어 석기 저장공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토기와 석기로 대별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에 무문양토기의 수가 가장 많으며, 문양이 있는 토기는 전체적으로 오산리식토기(鰲山里式土器)가 중심을 이룬다. 또한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의 유물로 알려진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가 많은 수량을 점하고 있어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고, 인접지역에 위치하는 양양 오산리유적과는 거의 비슷한 유물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토기는 크게 3단계로 변화가 확인되고 있으며, 10 · 9 층에 해당되는 1단계, 8~6층의 2단계, 5~1층의 3단계이다. 1단계는 압날 · 압인문토기를 포함한 유문토기와 융기문토기가 확인되지 않는 순수 무문양토기 단계이다. 2단계에 들어서는 압날 · 무문양토기와 융기문토기가 출현하고 그 수량도 급격하게 증가하는 단계이다. 3단계는 압날 · 무문토기와 융기문토기는 꾸준히 출토되지만 그 수는 적어지고 침선문토기가 출현하는 단계이다.
유적에서 가장 많이 확인된 무문양토기는 하층에서부터 상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으나, 특히 9층과 10층에서는 무문양만 출토되었다. 무문양토기의 기형은 발형이며, 내면은 목판긁기와 물손질로 정면하였고, 태토는 석영과 장석이 많이 함유된 사질토이다. 융기문토기는 모두 42점이 확인되었고, 대부분 6~8층 사이에서 출토되나 주로 7층에서 출토되는 2단계 토기이다. 토기는 시문방법과 문양형태에 있어서는 다양한 양상을 보여 주는데, 기형은 발형토기이며, 저부는 평저, 구연 직립하며 구순은 면을 이루고, 점토띠는 수평방식으로 접합하였다. 이러한 기형과 제작방법은 융기문토기에만 한정되지 않고 무문양토기와 압날 · 압인문토기, 주칠토기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어 일반적인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문양은 횡융기문, 횡융기문+삼각융기문, 횡융기문+종융기문, 종융기문 등 다양한 형태를 보이지만 문양상 차이가 시기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8층과 6층에서 출토된 각 1점을 제외한 유물이 7층에서 집중되고 있고, 2개층으로 구분되는 7층은 하층의 경우, 한줄의 융기대를 전체 돌리거나 일정부분을 공백으로 주면서 각봉(角棒)과 환봉(丸棒)으로 눌러가며 마디같은 문양적 효과로 토기와 접착을 강화하였다. 그러나 상층에서는 하층에서와 같이 각봉과 환봉을 이용하여 마디효과를 내는 것 뿐만 아니라 각봉으로 상하 눌러 토기의 접착을 강하게 하였고, 대형화된 토기와 융기대나 융기선으로한 다양한 문양(다선의 횡융기문, 횡융기문+삼각융기문, 사선융기문, 횡융기문+종융기문, 종융기문 등)으로 분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융기문토기의 출토가 층위적으로 시간적 선후관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으나 시기 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압날 · 압인문토기는 모두 158점이 1~8층에 이르기까지 각종의 기형에서 고루 출토되었다. 기형은 발형토기 심발형토기, 옹형토기, 접시형토기 등 다양하다. 저부는 평저이다. 구연은 직립과 외반된 것으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서 직립된 구연은 내면의 구연부에 단을 이루는 유무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문양을 제외한 제작방법과 기형, 태토는 무문양토기나 융기문토기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소형화된 접시, 접시형토기 같은 새로운 기종의 출현은 다른 토기에서 보이지 않는 특징이다. 소형토기는 7-2층과 8층에서 두드러지게 확인되고 있으며, 7-1층에서는 토기가 대형화되는 경향이 있다. 7-1층의 시기에는 장기간의 거주로 어로와 채집을 통한 대형 저장용 토기가 필요했을 가능성을 포함한 생계형태, 7-2층은 토기 이외의 출토 유물인 많은 낚시어구 등으로 보아 어로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어, 저장보다는 단시일에 소비하는 식생형태를 가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압날문토기는 크게 5가지로 세분되는데 I식은 자돌구로 평행점열문을 시문한 형태로 구연이 외반하거나 직립구연 내면에 단을 이룬다. II식은 자돌구로 평행점열문과 단사선문이 결합된 형태로 수량은 극히 적다. III식은 단사선문과 반죽관문이 결합된 형태로 발형과 심발형은 1점이지만, 옹형토기는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IV식은 반죽관문이나 죽관문을 시문한 형태로 6~8층까지 확인되고 있고, 유적에서 가장 성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문양은 대부분 1~3줄까지로 한정되게 시문하였고 구연은 I식과 같이 구연이 외반되거나 직립구연에 단을 이룬다. V식은 다치구(다양한 문양 모두 포함)로 시문한 형태이다. 3 · 6 · 7층에서 확인되고 있어 다른 토기에 비하여 후기적 양상을 띠는 토기이다.
옹형토기는 대부분 파수가 달려있는 형태이며, 파수 중간까지 문양을 시문하였다. 토기는 지표에서부터 7층까지 확인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긴 시간폭을 가진 유물이다. 문양은 구순에서부터 단사선문을 시문한 후 반죽관문 을 압날한 것, 반죽관문을 시문한 후 단사선문을 압날한 것, 구경에서부터 단사선문을 시문한 후 반죽관문을 압날한 것, 구경에서부터 반죽관문을 시문한 후 단사선문을 압날한 것 등 4가지로 구분된다. 옹형토기는 문양 및 기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층위상에서는 대부분 혼재된 양상을 띤다.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는 모두 274점이 출토되었는데 종류별로는 석부, 석촉, 석창, 마석, 지석, 석도, 석거, 결합식조침, 결합식작살, 결상이식, 골촉 등 다양하다. 석부는 전면을 마연한 마제석부가 대부분으로 7-2층에 집중적으로 출토되었고, 02-8호수혈에서는 7점이 결합식조침과 함께 집중적으로 매납되었다. 석부의 형태는 인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제형(梯形)과 일자형(一字形)을 이루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나뉜다. 석촉은 16점이 출토 되었는데 대부분 유엽형과 일자형으로 구분된다. 유엽형은 전면을 마연하여 촉은 날카롭지만 기부(基部)는 편평한 형태고, 단면은 렌즈형을 띤다. 일자형은 날부분만을 마연하였으며, 길고 곧게 뻗어 날부분에서만 뾰족하게 처리한 형태로 단면은 편육각형이고, 선단부는 편평하거나, 만입된 형태이다. 결합식조침은 65점이 출토되었으며, 02-8호수혈에서만 37점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활발한 어로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침은 7∼9층에서만 출토되고 상층에서는 출토되지 않아 하층에서는 어로생활이 중점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결합식조침의 형식은 모두 'J'자형이다. 어망추는 15점이 출토 되었으며, 평면형태는 타원형과 장방형, 원형 등 다양하며 대부분 양쪽 가장자리를 타격하여 홈을 만들었다. 결합식작살의 재질은 흑요석제와 규화석제이다. 흑요석제 작살은 많은 잔솔질을 통해 날을 세웠고, 상단의 촉은 3단을 양측면의 촉은 4단의 날카로운 거치상을 이룬다. 동해안 중북부지역에서 확인된 문암리유적은 신석기시대 무문양토기, 융기문토기, 압날·압인문토기, 침선문토기가 비교적 안정된 토층상에서 확인되어 선 · 후관계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오산리식토기, 융기문토기, 결상이식 등의 출토 유물로 보아 동북아시아의 주변지역과 전기 신석기시대 문화를 비교할 수 있는 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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