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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혁명(新石器革命)카테고리 없음 2022. 2. 8. 21:33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경과 가축사육 같은 생산경제로 진입하면서 생활의 전 영역에서 발생한 커다란 변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농경과 가축사육의 시작으로 야기된 변화를 산업혁명과 같은 인류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일들과 대비하여 설명하고자 호주 출신의 저명한 고고학자 고든 차일드(Gorden V. Childe)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농경의 발생을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지목하였기 때문에 농업혁명(農業革命, agricultural revolution)이라고도 부른다. 정치적으로 좌파적 경향을 강하게 가졌던 고든 차일드는 인류사의 전개과정을 사회경제적 토대의 변화 에 기반하여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이러한 인식 속에서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변화가 인류사 전개과정의 첫번째 혁명적인 변화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농경 발생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다른 학자들도 인식하였으나 농경이 인류사의 전개 속에서 갖는 사회경제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차일드에서 비롯되었다. 차일드는 신석기혁명으로 인해 인류가 처음으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대두되었으며, 이로 인한 인구증가는 다시 농경을 심화시켜 결국 도시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도시혁명으로 연결되었다. 다시 말해 세계사적인 의미에서 문명의 발생 신석기혁명에 의해 촉발되었던 것이다.
농경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 즉 오아시스 이론은 후빙기 환경변화에 따라 근동지역이 건조화하면서 인간 뿐만 아니라 동식물들이 결과적으로 수원(水源)을 찾아 모여들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간과 동식물의 관계가 이전과 달리 매우 밀접해지고 동식물의 습성에 대한 관찰이 가능해지면서 이들을 순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농경발생 이론은 이후에 로버트 브레이드우드(Robert Braidwood)의 유명한 근동지역 농경기원에 대한 학제간 연구를 통해 환경변화가 농경 등장시점에 존재하지 않았음이 드러나면서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지만 수렵채집사회 내에 발생한 변화(즉 모순)를 그들 스스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통해 결국 농경사회(모순의 해결) 로 진입하였다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입각한 그의 시각은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하고 독보적인 것이었다. 차일드는 인류사의 사건들 What Happened in History에서 구석기시대의 수렵채집사회를 야만, 신석기시대의 농경사회를 미개, 도시 등장 이후의 사회를 문명으로 구분하여 빅토리아시대 이래의 단계론적 진보사상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구체적 내용에서는 경제적토대와 사회제도의 변화에 입각하여 인류사를 설명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내용적으로도 혁명적이라 할 만하다. 일반적으로 신석기혁명의 물질적 표상으로 이해되는 토기 및 마제석기의 사용, 농경, 정주생활의 등장은 신석기 패키지라 불리는 것처럼 신석기혁명이라는 대변화를 이끌며 동시에 등장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사실 고든 차일드가 이와 같이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차일드는 이미 농경 이전의 토기 사용이나 마제석기 기술의 사용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신석기혁명이라는 개념은 농경과 가축사육이라는 생산경제 체제의 등장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위의 요소들은 신석기시대를 정의하는 특질로 이해되어 왔으며 '신석기혁명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이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난 하나의 사건(event)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나 근동과 여타 농경발생 중심지에서의 새로운 연구성과들은 신석기혁명이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과정(process)이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근동의 경우 농경 이전에 정주생활과 농경에 이용할 수 있는 도구체계(낫 등)가 이미 등장해 있었던 반면 토기는 상대적으로 매우 늦게 출현하였다. 유럽의 경우도 중석기시대에 이미 토기가 등장하기도 하며, 북미 북서해안의 경우는 농경 없이도 정주생활은 물론 사회 내에 위계가 발생한 소위 복합수렵채집사회가 번성하였다. 주지하듯이 한반도가 포함된 동아시아에서는 농경 등장 이전에 토기가 매우 이른 시기에 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석기 패키지는 세계 각지에서 동시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으며 장기간의 시차를 두고 결합되어 갔던 것이다
따라서 패키지의 개념, 또는 혁명의 개념은 현재의 관점에서는 부적절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신석기혁명이라는 개념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인류사의 획기적 전환 내용, 즉 식량생산경제의 시작 및 이와 결부된 정주생활의 확산, 장거리 교역의 심화, 인구증가 사회의 복합화 등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고고학적 측면에서 해석하여 인류사의 획기적 전환점으로 이해하고자 한 그의 시도는 이후 고고학계에서 농경의 기원 즉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이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