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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지역의 신석기취락(東海岸地域의 新石器 聚落)카테고리 없음 2022. 2. 9. 22:33
강원도 동해안지역은 태백산맥과 동해 사이에 위치하여 넓은 평야보다는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얕은 구릉과 그 사이사이에 좁은 평지들이 형성되어 있으며, 구릉들 주위에는 석호와 하천 주변의 넓은 사구지대가 발달하고 있다.
동해안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주거지가 조사된 시기별 지형적 특징을 살펴보면, 조기 전반(기원전 5500년 전후)은 초기사구가 형성되기 시작되는 시점으로 갱신세층 상면에 형성된 양양 오산리 C지구 하층문화층과 동해 망상동유적이 조사되었고, 조기 후반(기원전 5000년 전후)유적은 갱신세층 위에 사구가 2~4m 정도 형성된 후에 융기문토기와 오산리식토기가 공반되는 오산리 A · B ·C지구, 고성 문암리유적이 조사되었다. 중기(기원전 3500~3000년 전후)유적은 다시 사구가 2~4m 정도 더 형성된 다음에 입지한 양양 송전리 · 가평리 · 지경리 유적, 강릉 초당동 · 하시동유적 등이 조사되었다. 후기(기원전 2500년 전후) 유적은 하천이나 호수 주변의 구릉과 중기 유적이 확인되는 사구지대에서 동시에 확인되고 있으며, 말기(기원전 2000~1500년) 단계에서는 구릉위로 올라가 청동기시대로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주거지의 분포를 살펴보면 주거지들 간의 규칙성이나 정형성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발굴조사가 유적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전체 유적 중 극히 일부만이 조사되었기 때문이다.
초당동유적에서는 6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주거지가 위치한 지역과 대형의 야외노지가 위치한 지역이 일부 따로 확인되었고, 강릉 안현동유적에서는 경포호수에 바로 인접하여 주거지는 조사되지 않고 야외노지와 적석유구 58기가 조사된 것으로 보아 주거지가 입지한 곳과 조리시설은 별도의 공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후기 유적으로 판단되는 고성 철통리유적에서는 방형주거지 7기가 구릉의 정상부에 2~7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하지만 조리시설이나 생산시설이 확인되지 않은 것을 보면 주요 생활처인 주거지와 식량획득 장소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공간배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불의 사용으로 인한 화재와 불의 사용에 따른 화목(木)의 조달과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해안지역에서 조사된 조기 후반대의 주거지 형태는 문암리유적의 경우, 원형이 3기, 말각방형이 2기, 오산리 A지구는 원형 8기, 오산리 C지구에서는 말각방형이 3기, 원형이 1기가 조사되었는데, 원형이 12기로 가장 많다. 중기 주거지는 말각방형과 장방형 7기, 원형 12기가 조사 되었는데, 원형이 가장 많이 조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조사된 주거지 중 가장 빠른 시기인 오산리 C지구 5호주거지의 경우 지름 3.6m 크기의 원형이고, 최하층에서 확인된 추정 주거지도 5호주거지와 형태와 크기가 같은 점에서 보면 중기 유적이나 조기 후반대 유적의 주거지 형태는 원형이 많고 말각방형이나 방형은 이보다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유적별로 보면 오산리식토기가 주로 출토되는 오산리 A지구에서는 모두 원형계통이고, 융기문토기가 주로 출토되는 오산리 C지구는 대형의 말각방형이 3기, 원형이 1기이며, 융기문토기와 오산리식토기가 같이 출토되는 문암리유적에서는 원형이 3기, 말각 방형이 2기 확인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보았을 때, 조기의 주거형태는 크게 원형 주거지에서 방형 주거지로 변해간 것으로 판단된다.
중기 유적의 영동북부지역에 위치한 송전리, 가평리, 오산리 유적에서는 모두 말각(장)방형계 주거지들만이 확인되고, 강릉지역에서는 원형계 주거지들만이 확인된다. 양양과 강릉지방의 중간에 위치한 지경리유적에서는 원형계가 다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말각방형(4호) 1기가 확인되었다. 그리고 어깨선은 원형인데 바닥은 방형이 주거지 6기가 확인되어 형식적으로 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거지 내부시설로는 주로 노지가 확인된다. 조기 전반대 유적에서는 양쪽에 돌을 세운 수혈 무시설식노지가, 조기 후반대 유적인 오산리 C지구 주거지에서는 잘 짜여진 방형, 오각형, 원형, 장방형의 다양한 형태의 수혈식노지가 설치되는 것으로 볼 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지의 축조가 간단해지는 경향이 있다.
중기 유적에서는 21기의 주거지 중 위석식노지가 9기, 무시설식노지가 2기만 확인되었고 나머지는 확되지 않았다. 오산리식토기가 출토되는 오산리 A · B지구와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는 오산리 C지구의 주거지 형태, 노지, 토기의 특징 등을 비교해 보면, 주거지의 형태에 있어서는 원형과 방형계, 주거지는 지상식과 수혈식, 노지는 지상식과 수혈식, 토기는 오산리식토기와 융기문토기가 출토되므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거지의 입지도 쌍호와 가까운 저지대에는 오산리식토기 출토 주거지군이, 이보다. 동쪽으로 70m 떨어져 약간 높은 곳에 융기문토기 주거 지군이 위치한다.
주거지의 바닥은 약한 점토 다짐이 확인되며 단단하게 바닥을 다진 주거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는 모래위에 진흙을 다진 후에 오랜 시간 동안 모래에 흡수되어 바닥이 약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기 주거지의 평균면적은 28㎡이다. 주로 동해안지방 의 북쪽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말각(장)방형의 주거지 평균면적은 56㎡으로 대형에 속한다. 강릉지역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는 원형계의 주거지 평균면적은 17.5㎡이다. 방형계 주거지와 원형계 주거지 간의 면적차가 3배 정도로 방형계 주거지가 크다. 이러한 경향은 원형주거지들이 대부분 만들기가 쉬운 원추형의 소형이어서 일시적 주거지나 주거지의 부속건물로 사용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반면 원형 주거지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방형 주거지들은 기둥과 보의 설치에 따른 건축기술이 필요하고, 건축에 필요한 노동력과 건축자재의 조달에 따른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므로, 사용목적에 따라 주거지의 형태가 달랐을 것으로 판단된다.